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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칼럼 -
제목전후방이 따로 없다(2019.10.17 )2021-02-16 10:45
작성자user icon Level 10

지난주에 지방회 목회자 연장교육이 있었습니다. 미주성결대학교 총장이신 이상훈 교수님이 “선교적 교회”에 대해서 강의를 했습니다. ‘선교적 교회’ (missional church)라는 용어는 1990년대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그 개념이 태동한 배경은 이렇습니다. 영국의 ‘레슬리 뉴비긴’(Lesslie Newbigin) 선교사는 1936년 인도로 선교를 가서 사역을 하다가 35년 만인 1974년 영국으로 돌아왔을 때 레슬리 뉴비긴 선교사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영국은 선교하는 나라에서 이제 선교가 필요한 사회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남긴 말입니다.

“(영국에서의 목회는) 인도에서 경험했던 그 어떤 것보다 어렵다. 반대를 넘어 복음에 대한 차가운 멸시가 있다.... 영국은 이제 이교도 사회이며, 이교도의 거친 형태와 직면해야 하는... 과제가 되었다.”

 

얼마 전 영국의 가디언誌에서는 유럽 21개국 16∼29세 사이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기고했습니다. 자신을 무신론자라고 대답한 젊은이가 유럽 평균 56%였고, 영국은 70%나 되었습니다. 그래서 ‘선교적 교회’ 즉 국내 지역교회들도 선교적인 열정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것을 연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현대전은 게릴라전이라서 전선이 따로 없습니다. 한국도 1968년 김신조 사건으로 잘 알려진 서울침투 1.21 사태 이후 향토 예비군을 창설하여 후방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영적 전쟁의 최전선이라고 할 수 있는 해외 선교지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사이, 후방이라고 할 수 있는 국내의 교회들이 복음 전도를 잃어버려서는 안되겠습니다. 이제 영적 전쟁에는 전후방이 따로 없습니다. 모든 성도들은 선교의 향토 예비군입니다.

 

사실 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하는 역할 (missionary church)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선교사이고 그들의 삶의 자리가 바로 선교지라는 개념은 1990년대에 처음 창안한 것이 아닙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1세기의 교회들이 이미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5년 째 나아가고 있는 가정교회도 ‘선교적 교회’ 운동의 한 지류(支流)입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자는 강의를 듣고 젊은 목사님들이 공감하고 도전을 받는 모습이었습니다. 부족하지만 이미 그런 교회론을 찾아서 갱신하고 있는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감사하고 소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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