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도행전 말씀을 묵상하다 보니 초대 교회에서 평신도들의 활약상이 대단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평신도’(layman)라는 말자체가 성직자 우월주의가 만들어낸 용어일 뿐, 초대교회에는 ‘성직자/평신도’의 2분법적 개념 자체가 없었다고 해야 맞다. 사도들은 말씀과 기도, 영적 리더십에 대해 소명을 받은 사람들이고, 집사는 행정적 리더십에 대해서 소명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초대교회 집사들은 재정이나 행정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고, 영적인 사역에도 쓰임 받았다. 빌립 집사는 사도들보다 먼저 사마리아 선교와 외국인 전도의 물꼬를 튼 장본인이다. 스데반 집사는 순교자 야고보 사도보다 더 앞서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다. 사도들에 비해서 그들의 열정과 영성이 결코 뒤지지 않았다. 스데반에 대해서 사도행전 6장은 ‘은혜와 권능과 지혜가 충만했다’고 묘사하고 있다. 스데반 집사는 유대교 최고의 랍비들과 제사장들을 앞에 두고서 일장 설교를 담대하게 외칠 정도의 영성이었다.
가정교회를 탐방해보면, 목사 보다 훌륭한 평신도 목자들을 만날 때도 있다. 부끄럽고 또 존경스러운 순간이다. 전에는 내 자신이 평균보다 많이 떨어지는 목회자는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가정교회 하시는 훌륭한 목회자들을 하도 많이 보게 되면서 내 자신이 상당히 뒤떨어지는 목회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뭔가 도전받고 배울 수 있는 롤 모델적인 목회자들을 만나 교제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다.
사도행전은 어쩌면 평신도행전이라고 해야 어울릴지도 모른다. 성도들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설정해놓고 ‘조연’(助演)에 안주하지 말고, 신약교회의 집사들같이 하나님 나라의 주연(主演)들이 되어야 한다. 그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빌립과 스데반 집사들처럼 영적인 사역의 길에 뛰어 드는 것이다. 그래서 온누리성결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맞는 신앙 목표가 있다면, 행정적 사역 1개와 목양(목장 관련) 사역 1개씩 감당하겠다는 것이다. 신약교회는 이루어진다. 평신도 행전은 지금도 재현되고 있다. (강재원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