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6-16]
난 주중 이 지역의 어느 목사님 부부와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가정교회에 대한 대화도 나누었지만 예배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저와 연배가 비슷한 분이지만 교인 중에 예배에 임하는 자세가 불성실하면 설교 하는 중간에도 야단을 친다고 합니다. 비록 분위기는 좀 경직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세만큼은 가다듬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런 카리스마는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든지 담임목사가 교회의 유년부터 노년까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예배자가 되도록 이끌어줄 책임은 있습니다. 헌법에 보면 담임목사에게 예배 전체를 디자인하고 주관하는 임무를 부여하고 있기도 합니다.
요한복음 4장에, 예배하는 자는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고 말씀합니다. 예배에는 따뜻한 감동이 있어야 하고 동시에 말씀의 진리가 균형을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뜨거운 예배 그리고 바른 예배 두 가지 중 하나가 희생되면 안 됩니다. 바른 예배만 추구하다가 경직되고 차가워지기 쉽고, 뜨거운 예배만 추구하다가 혼돈스럽고 자기중심적인 예배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배의 음악도 중요하고 말씀도 중요합니다. 과거 1980년대 초까지는 지나치게 예배의 거룩성을 추구하다가 너무 율법적이고 경직되어 기쁨이 부족했던 것 같고, 그 이후에는 예배의 대중성을 추구하다가 너무 자기 감성 중심이 되어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약화된 것 같습니다.
신앙배경이 약한 분이나 포스트마던 젊은 세대에게 경직된 예배만을 강요하면 전도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예배의 거룩한 긴장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일에 백악관의 대통령 오찬에 초청받았다고 가정해봅시다. ‘시간엄수, 에티켓, 대화’ 등 상당히 준비하고 긴장하고 기대할 것입니다. 우주의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 이시기 때문에 편하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편하다고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예배 중에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기대감과 두근거림이 있어야 합니다. 요즘 예배를 너무 옵션으로 쉽게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미리 양해도 없이 내 기분이나 형편에 따라서 갑자기 약속을 취소해버려서 하나님을 바람맞히기도 합니다.
가정교회의 예배는 대게 감격이 있습니다. 이미 월요일부터 삶의 준비와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설교도 성경주석이나 해석 과정을 충분히 거치지만, 더 많은 시간을 적용부분에 투자합니다. VIP와 초신자의 문화와 언어에 맞추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두렵고 떨림)과 임재를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다음 주 칼럼에서는 그럼 우리 교회가 예배의 기쁨과 감격을 희생하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예배의 경외심을 회복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겠습니다. (강재원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