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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칼럼 -
제목예언에 대한 이해 (최영기 목사 칼럼)(2019.05.19 )2021-02-16 09:57
작성자user icon Level 10
돌아오는 금요일부터 곽인순 목자 간증집회를 갖습니다. 곽목자님은 여자 목자로서 휴스턴 서울교회에서 20년 이상 목양사역을 했고 예언은사를 통해 상담사역과 가정교회에서 많은 집회를 했습니다. 예언에 대한 바른 이해를 위해 최근 최영기 목사님이 쓰신 칼럼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성령 받은 사람에게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나타납니다. 또 성령 받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에도 초자연적인 현상이 나타납니다.

초자연적이라고 해서 반드시 신비한 일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를 믿을 수 없던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고, 변할 수 없던 사람이 변화하는 것이 초자연적인 현상입니다. 끊어지지 않던 악습에서 벗어나고, 부정적인 사람이 긍정적으로 바뀌는 것도 초자연적인 현상입니다.

교회 안에서 성령님의 나타나심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성령의 은사가 드물게 나타나는 이유는 세대주의 영향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세대주의자들은 성령님의 은사는 사도들에게 권위를 실어주기 위하여 주어졌고, 성경이 완성됨으로 인하여 성령의 은사도 그쳤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완성되고 사도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성령의 은사가 그쳤다는 것은 근거 없는 이론입니다. 성령님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서 성령님의 나타나심이 없는 것을 변명하기 위해 만들어낸 이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령의 은사 중에서, 고린도 전서 14장에서 다루고 있는 예언에 관해 말씀드립니다. 아시다시피 예언자는 점쟁이처럼 장래를 맞추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사람입니다. 고전 14:31을 보면 예언은 고린도 교인들 일상적인 예배 생활의 일부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언의 목적은 덕을 세우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입니다(고전 14:3).

사실 우리는 예언의 말을 받고서도, 혹은 실제로 예언을 하면서도 그 사실을 모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분의 마음 아픈 얘기를 들으면서 마음속에 억제할 수 없는 동정심이 끓어오르면서 확신을 갖고 이런 말을 해줄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마음을 알고 계십니다. 앞으로 잘 될 것이니까 염려 마세요.” 이 말을 들은 분이 이 말에 용기를 얻게 되었다고 말한 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예언의 말씀을 받고서도 몰랐던 경우일 수 있습니다. 이 말을 1인칭으로 바꾸면 예언이 됩니다. “내가 네 아픔을 알고 있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내가 너를 도와주겠다. 너는 염려하지 말아라.”

예언자는 하나님의 느낌을 더불어 느낍니다. 하나님이 슬퍼하실 때에 그 슬픔을 느끼고, 하나님이 안타까워하실 때에 그 안타까움을 느끼고, 하나님이 분노하실 때에 그 분노를 느낍니다. 그래서 성경에 기록된 예언자들의 표현이 격렬한 것입니다.

우리가 상담을 할 때에 성령님께서 예언의 말씀을 주시는 수가 많습니다. 내담자를 향한 하나님의 안타까움을 더불어 느끼게 하시고, 덕을 세우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씀을 주십니다. 이럴 때에는 “나 여호와가 말한다!” 식으로 강압적으로 말하지는 말고, “하나님께서 이런 말씀을 주시는 것 같아요” 식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예언의 말씀으로 전달할 수 있습니다.

저는 설교자로서 설교 말씀이 예언의 말씀이 되기를 소원하고 기대합니다. 그래 설교 준비할 때 20분간의 기도시간을 여기저기에 넣고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립니다.
주일 설교가 끝나고 성도들이 헌신대에 나와 기도 받을 때에도 예언적인 기도가 되도록 노력합니다. 그래서 헌신한 분이 헌신 카드에 요청한 기도와 다르게 기도해줄 때가 있는데, 내가 해준 기도가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기도였다고 말하는 수가 많습니다... (최영기 목사 신간 ‘답은 고린도에 있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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