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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칼럼 -
제목남은 고난2021-02-15 19:59
작성자user icon Level 10

남은 고난

불교나 힌두교 , 천주교에는 고행이란 게 있다 . 육체의 욕망을 누르고 최고의 정신 활동을 얻고자 몸을 괴롭혀 도를 닦는 자발적인 수덕 행위이다 . 장기간 단식을 하거나 며칠 동안 눕지 않고 앉아서 기도하거나 간혹 신자 중에 십자가 형틀을 재현해서 실제로 자기 손에 못을 박는 등 자해 행위를 하면서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려는 사람도 있다 . 1511 년 독일 한 수도원에서 수행 ( 修行 ) 에 전념하고 있던 마르틴 루터가 교황청이 있는 이태리 로마로 순례를 갔다 . 성 계단 (Scala Santa) 성당 내부에 있는 ‘ 빌라도의 계단 ', 혹은 ` 거룩한 계단 ' 이라고 칭하는 28 계단을 무릎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 그 돌계단은 콘스탄틴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예수님께서 재판을 받으시러 밟고 올라가신 계단을 로마로 옮겨온 것인데 , 무릎으로 오르기를 거듭하면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경험케 된다는 전설이 있었던 것이다 . 루터는 여기에서 복음적인 믿음을 고민하게 되었고 몇 년 후 종교개혁을 단행한다 .

 

사도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이르기를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노라  고 했다 . 그러나 그것이 결코 고행이나 금욕 , 자해 행위를 통한 고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 앞 뒤 문맥을 보면 ,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일    교회에서 봉사하는 일  을 가리키고 있다 . 죄를 속하기 위한 주님의 고난은 이미 완성되었다 . 죄 사함을 위해서 누군가 다시 고행할 필요는 없다 . 다만 복음은 계속 전파되어야 하는데 , 이에 고난이 따른다 . 그리고 세워진 교회는 계속 자라야 한다 . 여기에도 누군가의 수고와 희생이 필요하다 .

 

그렇다면 성도들은 고난 주간은 어떻게 보내야 할까 ? 예수님의 마지막 한 주간 행적을 요약해보면 ,  성결과 사랑과 섬김과 기도  에 시간을 보내셨다 . 경건한 성도들은 매년 습관적으로 금식이나 기도의 고난을 자처한다 . 그러나 이런 특별 기도나 절제의 최종 목표는 영혼 구원이요 , 또한 사랑의 섬김이 되어야 한다 . 금식한다면 그 식사비를 구제비로 써보자 . 기도할 때 자기 문제보다 VIP 나 목원 , 교회를 위한 제목에 더 집중해보자 . 이런 저런 이유로 목장을 불참했었다면 이번 주 만큼은 맛있는 음식으로 이웃을 섬겨보자 . 목장이나 부활주일에 평소 기도하던 영혼을 용기를 내어 초청해보자 . 그런 작은 도전들이 바로 ‘ 남은 고난 ’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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