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예배 열왕기 말씀 중에 나아만 장군의 ‘생각’에 대해서 연구하다가 우리들의 생각에 대해서 깊이 묵상해보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철석같이 붙들고 살아갑니다. 자기 생각이 맞는다고 목숨을 걸고 주장하기도 하고 부질없는 맹세를 하기도 합니다. 서로 자기 생각을 상대방에게 관철시키기 위해서 언성을 높이다가 감정이 일단 상하면, 설령 내 생각이 틀리다는 증거가 제시되어도 자존심 때문에 끝까지 고집을 부리고 맙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크리스천들은 어떤가요? 우리의 생각보다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생각이고 하늘 아버지의 의중(意中)입니다. 완전하신 하나님 앞에서 나의 알량한 생각을 주장할 수 없고,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마음이 되어야 올바른 길로 갑니다. 로마서에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합니다. 빌립보서에는 우리가 염려대신 기도를 선택할 때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신다’고 말씀합니다. 겸손하고 신실한 크리스천이라면 ‘일단 내 생각이 맞을 것으로 간주하고 주장하는 습관’을 버리고 ‘먼저 내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을 조율(sync)하는 습관’을 배워야겠습니다. 왜냐하면 불완전한 우리들의 생각은 많은 경우 착각과 망각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 나아만 장군이 요단강의 초라함을 지적하는 장면에서 20년 전 제가 신학교 졸업여행을 이스라엘로 갔던 경험을 말씀드렸습니다. 저 역시 그 때 내가 상상하던 요단강이 아닌 초라한 규모에 실망했었습니다. 그래서 ‘강도 아니요 시내도 아니요 폴짝 뛰면 건널 것 같은 도랑 수준’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같이 갔었던 아내로부터 그 정도는 아닌데 잘못 설명했다는 지적을 받고 자료와 사진을 살펴보니 제가 착각한 것 같습니다. 여름과 겨울에 수량의 차이가 크고 강의 폭이 위치마다 천차만별이지만 ‘도랑’수준은 아니고 최소 10미터는 된다고 합니다. 오래전 제가 너무 실망한 나머지 실제보다 작게 각인이 되었었나 봅니다. 저의 과장된 설명을 정정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들의 불완전한 인지능력으로 인해 흔히 발생하는 ‘착시, 착각, 망각’ 현상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오해할 수 있고 착각할 수 있다는 것을 서로 인정하면 참 부드럽고 편안해질 것입니다. 숨통이 막힐 정도의 틀에서 벗어나서 서로의 차이를 수용할 수 있는 여유 공간이 생겨서 세상이 더 따뜻해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