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강해 (23)
누구나 기도하는 집 (사 56:5-7)
지난 주말에 있었던 부흥집회에서 여러분들은 어떤 것을 깨닫고 어떤 것을 결심하셨습니까?
시간만 많으면 오늘은 설교하지 말고 일일이 나오셔서 간증만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똑같은 말씀을 듣고도 은혜 받는 사람이 있고, 전혀 은혜 못 받는 사람이 있죠.
은혜 받은 사람은 겸손한 사람입니다.
은혜 못 받은 사람은 교만한 사람입니다.
저는 이번 집회에서 좋은 열매가 많아서 참 감사했습니다. 이어진 일일특강도 성공적으로 잘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 속에는 뭔가 죄송하고 불편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기도가 참 부족하다는 부담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형통을 주실수록 까불지 말고 더 기도해야지’ 이런 깨달음이 생깁니다. 여러분은 안 그러십니까?
마침 오늘 이사야 말씀이 기도에 대한 메시지입니다.
-(5절) 하나님의 집(성전, 교회)에서 예배하는 일이 끊어지지 않을 때, 그 후손들에 하나님의 이름이 끊어지지 않겠다고 약속합니다. 자녀가 잘되기만 바라지 기도의 헌신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집(교회)에서는 기도가 끊어지면 안 됩니다.
(출 27:20-21) 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감람으로 짠 순수한 기름을 등불을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않게 등불을 켜되, 아론과 그의 아들들로 회막 안 증거궤 앞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보살피게 하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지킬 규례이니라.
우리 개인의 신앙에서도 기도가 끊어지면 신앙은 죽은 것입니다.
(삼상 12:23)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살전 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어떤 신자는 이렇게 변명합니다. ‘새벽기도, 수요기도회는 안 나오지만 저는 항상 기도하는 마음으로 삽니다.’ 이것은 기도하는 신앙일까요?
(엡 6: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또 어떤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기도는 특별한 은사를 가진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닌가요?
(6절) 이방인마다....(7절) 만민이 기도하는...
하나님께서는 모두가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어제로 111중보기도팀 1기가 3개월의 사역을 마쳤습니다. 이번 111기도로 우리 교회 기도의 저변이 확대된 것 같습니다. 전에는 중보기도 하면 특수 은사를 가진 소수의 전유물인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환상이나 예언이나 꿈을 통해서 계시를 받는 사람들이나 하는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그런데 누구나 순종만 하면 남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작년에 War room이라는 영화가 개봉되었습니다.
교회가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할 뿐 아니라, 가정이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함을 감동적으로 보여주는 훌륭한 영화입니다. Redbox에서 랜트해서 보실 수 있습니다. 111 중보기도팀은 돌려가면서 이 영화를 보려고 제가 하나를 구입했습니다.
설교 후에 잠시 예고편을 보여드리겠습니다.
(7절) 하나님의 집은 만민에게 열려있습니다.
가정교회에서는 비신자 전도에 매진하기 때문에 신자가 방문하면 타교회를 소개해드립니다. 그런 취지를 정중하게 설명 드리면 두 가지 극명한 반응이 나옵니다. “아 교회가 마땅히 그래야 하죠.” “이단 아니에요. 무슨 교회가 사람을 가려서 받아요?”하고 분개하는 분도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가정교회의 영혼사랑을 이해하지 못하시는 분이 있는데 한 번 잘 들어보세요.
왜 기신자 등록 거부가 잘못된 것이 아닌지 설명해드리겠습니다.
1) 가정교회 하기 전에 우리 교회가 모든 사람들이 쉽게 올 수 있는 교회였을까요?
우리 교회 방문자에게 그렇게 따뜻하고 적극적으로 영접하는 분위기 아니었습니다.
상당히 냉담하고 무관심했었습니다.
그리고 가정교회 하기 1-2년 동안 방문자, 새등록자 거의 없었습니다.
가정교회 안 하는 교회들은 기신자 환영하니까 그럼 전부 다 부흥 성장하겠네요?
2) 신앙생활 오래했던 사람들을 환대하는 교회는 은연중에 믿음 없는 사람들을 박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세요. 초신자나 비신자는 교회를 나와도 봉사할 줄도 모르고, 십일조나 헌금생활도 아직 잘 못합니다. 그러니까 신앙생활 오래하신 분들을 우대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차별입니다.
*쉽게 설명해서 어느 회사에서 사원을 뽑는데, “유경험자 우대”라고 하면, 그것은 말은 안 하지만 “무경험자는 박대”라는 뜻이 됩니다.
그러니까 가정교회 이전에 우리는 교회에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을 은연중에 홀대하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3) ‘교회가 딴 교회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을 보듬고 치유해야 하는 것 아닌가?’ 라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치유할 능력 있습니까? 저보다 더 따뜻한 목사님으로부터 치유 못 받은 사람이 우리 교회 와서 치유 안 됩니다. 실제로 과거에 우리 교회로 옮겼다가 치유 받지 못하고 또다시 상처를 주고받으며 다른 곳으로 가신 분들이 대다수입니다.
탕자의 비유를 한 번 생각해보세요. 이미 아버지 곁에 있던 큰 아들보다 방탕하고 무책임한 작은 아들을 편애하고 감싸고도는 아버지의 태도에 대해서 장남이 얼마나 분개했습니까?
(눅 15:28) 큰 아들은 화가 나서,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나와서 그를 달랬다.
15:29 그러나 그는 아버지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이렇게 여러 해를 두고 아버지를 섬기고 있고, 아버지의 명령을 한 번도 어긴 일이 없는데, 나에게는 친구들과 함께 즐기라고,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주신 일이 없습니다.
15:30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서 아버지의 재산을 다 삼켜 버린 이 아들이 오니까, 그를 위해서는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15:31 아버지가 그에게 말하였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으니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다 네 것이다.
15:32 그런데 너의 이 아우는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으니, 즐기며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아버지가 큰 아들을 사랑하지 않았을까요?
잃어버린 한 마리 양에 대한 목자의 편애와 99마리 양에 대한 문제 제기도 마찬가지입니다.
99마리의 양은 돌봄이 필요치 않단 말인가? 99마리의 양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닌 것 아시죠? 그들에게는 다른 목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벼랑에 걸려있는 양은 지금 당장 우리가 구해주지 않으면 바로 죽을 양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와 목자가 잃어버린 소수에 올인한 것은 우선순위의 문제일 뿐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기신자 등록 거부에 대해서 분개하지도 마시고 그런 논리에 귀를 기울이지도 마시고, 그 시간에 기도하세요. 그 에너지로 한 영혼이라도 섬기세요. 헌신이 없는 논리는 모두 헛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기만 하고 기도를 쉬고 있었다면 회개하시고 이번 -주부터 기도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기 쉬는 죄를 범하지 마세요.
이 교회가 만민에게 열려있는 기도의 집이 되고, 여러분 가정과 목장이 또한 기도의 집이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