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5일 (수)
"나다나엘의 마음 " (요한복음 1:43-51)
찬송 324장
요한복음에서는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이 특이합니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12명의 제자들을 한꺼번에 부르신 것처럼 보이지만, 요한복음에서는 한 사람씩 고구마 줄기가 붙어서 올라오듯이 순차적인 부르심으로 묘사됩니다.
요한의 제자였던 안드레가 형 베드로를 부르시고, 베드로 형제와 한 고향인 빌립을 부르시고, 빌립이 나다나엘을 불러서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인 것을 성경적으로 증명할 실력은 못 되었지만 최소한 "와서 보라"는 기초적인 인도의 열정은 있었습니다.
(46절) 초청을 받은 나다나엘이 처음에는 시큰둥 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고향이 나사렛이란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구약 예언서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나사렛에는 메시야가 나온다는 예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소?' 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역은 영적으로 어둡다거나 교회가 부흥될 수 없는 지역이라든가 하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것은 마치 '포틀랜드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느냐?'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의 선지식과 경험을 초월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논리와 경험을 너무 주장하면 안 됩니다.
(47절) 그래도 한 번 와서 보라는 빌립의 강권 때문에 나다나엘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나다나엘이 다가오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은 다 알고 말씀하셨습니다.
'저 사람은 참 이스라엘 사람이다. 그에게는 거짓이 없다'
이것은 구약의 야곱을 염두에 둔 표현입니다. 이스라엘이란 이름으로 변화되기 전 야곱은 거짓의 사람이었습니다.
(48절) 나다나엘이 무화과 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고 그를 아셨습니다.
무화과 나무라는 것과 49절에서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향해 선생님 즉 원어로 '랍비'라고 부르는 것이 관련 있습니다.
당시 유대교 랍비들은 포도나무나 무화과 나무 아래에서 말씀을 읽고 연구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왕상 4:25)에 보면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는 솔로몬 시대의 평화와 번영을 상징합니다.
또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는 메시아 시대의 도래를 상징합니다.
(스가랴 3:10)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그 날이 오면, 너희는 서로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이웃을 초대할 것이다.
그러니까 나다나엘은 무화과 나무 아래에서 랍비들과 같이 말씀을 연구하면서 메시아의 시대를 꿈꾸고 기다려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 보시기에 물욕에 간사해지지 않고 참 이스라엘 백성 다운 마음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보면 메시아를 간절히 오랫동안 기다리던 안나, 시므온 같은 사람들이 주님을 만났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잠 8:17) 나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며, 나를 간절히 찾는 사람을 만나 준다.
(기도)
1. 나를 통하여 귀한 영혼들이 주님께 차례데로 나아올게 불러주옵소서!
2. 내가 살고 있는 환경을 부정적이고 불신앙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지 말게 하옵소서!
3. 세상의 물욕으로 간사해지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참 그리스도인 다운 마음을 품고 살게 도와주옵소서!
4. 오늘 아침에도 주님을 간절히 찾아서 만나는 심령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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