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27일 (목)
"정죄하지 않기" (요한복음 8:1-8:20)
7장에서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고 믿지 않던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8장에 들어오면서 좀 더 공격적이고 적극적으로 예수님께 도전합니다.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모세의 율법대로 돌로 쳐죽일 것인가 용서해줄 것인가? 하는 곤란한 질문을 던집니다.
사랑과 공의가 서로 동시에 성취되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어서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려는 계략이었습니다.
돌로 쳐 죽이라고 하면 사랑이 없다고 하고,
용서해주라고 하면 율법의 공의를 훼손시킨다고 하여
이래도 저래도 고발할 속셈이었던 것입니다.
-성도들의 삶 속에서도 이런 유사한 곤란한 상황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사랑으로 행하자니 질서가 무너지고, 엄격하게 처리하자니 상처받는 사람들이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한 번 마음에 부정적인 생각을 품으면 사람이 이렇게 행동해도 밉게 보고 저렇게 행동해도 역시 밉게 보고 비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7절)에서 주님은 논리적으로 따지는 것 대신, 양심에 호소하셨습니다.
'너희 가운데서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이 말씀을 하시기 전과 후에 땅에 무언가를 쓰셨습니다. 많은 주석가들이 그 쓴 내용을 추측합니다만, 요한이 기록하지 않았다면 그 내용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땅에 쓰시는 동안 만큼은 서기관들도 바리새인들도 논쟁을 중단하고 주목했을 것이며 침묵이 흘렀을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과의 논쟁을 멈추고 시끄러운 세상에서 조용히 자기를 돌아보는 묵상의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양심을 일깨워주셔서 회개할 수 있게 도와주실 것입니다.
남녀노소가 모두 양심의 가책을 받고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11절)에서 주님은 죄를 지은 여자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시며 사랑과 긍휼을 표현하셨습니다.
그럼과 동시에 '이제부터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라고 당부하심으로 공의를 추구하셨습니다.
-우리들은 이 반대로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제적으로 죄를 반복하지 않도록 기도해주고 도와주지도 않으면서 타인이 지은 과거의 허물과 잘못에 목숨을 걸고 지적하고 공격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12절)에 예수께서는 당신을 '세상의 빛'으로 선언하신 것입니다.
죄악으로 어두운 세상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넘쳐나지만, 작은 불 빛이라도 그 어둠에 비추려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기도)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문제와 약점을 입술로 비난하는 것 대신에 내가 그 어둠에 빛을 비추어 줄 수 있는 작은 일은 무엇이 있는지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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