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4(목)- "빌라도의 책임" (요 18:39-19:16)
찬송 144장
빌라도는 예수님을 살리고 강도 바라바를 처형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강도를 살리고 오히려 죄 없으신 예수님을 죽이라고 외쳤습니다.
특별한 범죄 사실을 찾을 수 없자, 로마 황제에 반역하는 정치범으로 몰고 갑니다.
만만한게 정치범, 사상범이 아닙니까?
'동무는 사상이 의심스럽소! 동무는 반동이오!'
이러면 인민재판에 회부되는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로마 황제에게 바칠 세금은 다 바치라고 가르치셨고, 로마에 대항해서 독립투쟁을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고 밝히셨습니다. 그러니 반역죄도 누명에 불과합니다.
빌라도는 예수 처형에 대해서 자기 책임이 아니라고 확증하고 손까지 씻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죽인 것은 유대인들이고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는 어떻게든 구명하려고 애썼기 때문에 책임이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방조죄, 동조죄'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도신경할 때 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라고 수도 없이 불려지고 있지 않습니까?
*공공 장소에서 약자가 묻지마 폭행을 당하면 요즘 사람들은 경찰에 신고하거나 여러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 도와주려고 하질 않고 전부 전화기로 비디오 촬영만 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지탄 받아야 마땅한 방조죄에 대당된다고 생각합니다.
-진리의 편에 용기있게 서지 못하고, 비겁하게 눈치만 보면서 자기 책임만 회피하려는 자세가 우리 신자들에게도 있지 않는지 돌아봅니다.
(계 3:15-16) 나는 네 행위를 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겠다.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내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
(기도)
1. 순종하는 것도 아니고 불순종하는 것도 아닌 미온적이고 비겁한 신앙 태도를 회개합니다. 영적 결단력을 주옵소서!
2.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볼 때, 눈치 보지 말고 선한 사마리아인과 같이 적극적으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도와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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