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목) "용서받은 자의 용서" (마 18:21-35)
찬송 311장
21절/ 베드로의 질문에서 용서에 대한 주제가 시작되었다.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해주어야 하느냐?”는 질문을 예수님께 드렸다.
22절/ 예수님의 대답은 7번 뿐 아니라, 70번 곱하기 7번, 즉 490번이라도 용서해주어야 한다.
490번은커녕, 7번 반복되는 불쾌한 일도 참지 못할 것이다.
23절부터 재미있는 비유를 말씀하심으로, 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에게는 용서가 가능한가에 대해서 명확하게 가르치셨다.
이 비유에는 세 명의 등장인물이 있다.
어떤 임금, 일만 달란트 빚진 어떤 종, 그리고 백 데나리온 빚진 또 다른 종.
그 임금이 결산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종에게 채무를 이행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갚을 현금이 없으므로, 그 몸과 처자식과 모든 소유를 팔아서 갚도록 명령했습니다.
그러자 이 빚진 사람은 바싹 엎드리어 절하며, “조금만 참아 주세요. 다 갚겠습니다”라고 애원했습니다.
이것을 보던 임금님은 그 사람을 놓아 보냈습니다. 다 갚겠다는 말을 믿고 풀어준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 일만 달란트라는 액수는 상환이 거의 불가능한 금액인 것입니다.
1달란트라는 것은 노동자가 1년에 365일 일해서 16년동안 벌어야 할 금액입니다.
그런데 이 종이 진 빚은 1만 달란트였습니다. 즉 16만년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해야 갚을 수 있는 빚입니다.
그러니 ‘다 갚겠다’는 말은 무의미했습니다.
그 임금님이 이 빚진 자를 풀어주고, 빚을 탕감해준 유일한 이유는 27절에 나와 있는 데로입니다.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하나님께서는 이 비유속의 임금님과 같이, 저와 여러분을 불쌍히 여기사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청산할 수 없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셨습니다.
16만년이 아니라 영원히 지옥 불에서 사력을 다해 노력해도 받을 수 없는 죄 사함과 구원을 은혜로 받은 것입니다.
할렐루야!
자 그런데, 이런 감격적인 빚의 탕감을 받은 종이 집으로 돌아갈 때였습니다.
이번에는 자신에게 빚을 진 또 다른 동료 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너 이놈 여기서 잘 만났다. 내 돈 백 데나리온 빨리 내놓아!”라고 호통을 치며 멱살을 잡았습니다.
그럼 이 백 데나리온은 얼마만한 금액일까요? 노동자의 백일 품삯입니다.
시간당 평균 임금으로 따져보면 대략 6천불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금액입니다. 인간적인 욕심으로 따지면 사실 적은 액수는 아닙니다.
그러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임금님의 궁에서 가까스로 풀려난 입장에서는 그깟 6천불이 대수이겠습니까?
우리가 맨 정신으로 6천불로 불쌍한 사람 도와주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잃어버린 3억 6천만불의 현금을 고스란히 주워서 돌려주었다면, 그깟 6천불 정도가 아깝겠습니까? 6만불, 6십만불이 문제가 아니라, 그 반만 건져도 감지덕지 일것입니다.
그런데 일만 달란트 탕감받은 종은 불과 몇 분 전의 기적같은 감격의 사건을 다 잊어버리고 파렴치하게 행동합니다. 자신이 방금 탕감받은 빚의 1/60만 도 안되는 자신의 채권을 포기하지 않고 욕심 사납게 굴었습니다.
‘조금만 참아 주세요. 다 갚겠습니다’라고 애원했지만, 한마디로 거절하고 쇠고랑을 차게 했습니다.
“이 나쁜 놈, 너 같은 파렴치한 놈들은 콩밥을 먹어야 정신을 차리지”
“요즘 같은 세상에 남의 돈을 공으로 먹으려 들어. 한심한 놈. 갚지도 못할 돈을 왜 빌려?”
6천불을 피해 본 것이 너무나 억울해서, 언성을 높이고 핏대를 세우며 얼굴을 붉히는 것입니다.
어디서 많이 보던 모습 아닙니까?
억울하고 분해서 용서하지 못하고 씩씩대며 쉽게 흥분하고 열을 올리는 나의 모습을 거울로 보는 듯 합니다.
도대체 우리를 그토록 화나게 하는 피해를 본 금액이 대체 얼마랍니까? 얼마라구요? 6천불요. 석달치 월급요.
겨우 그 정도에 우리의 목숨을 걸었단 말입니까?
겨우 그 정도를 포기하지 못해서 하나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실망시켰단 말입니까?
우리가 받은 16만년의 빚, 3억 6천만불의 불가능한 빚에 비하며 그저 아무것도 아닌 금액 때문에,
그토록 흥분해서 길거리에서 형제의 목을 닭목아지 비틀듯 비틀고 소리 질러 몰아세웠단 말입니까?
결국 이 파렴치한 행동이 임금님의 귀에까지 들렸습니다.
임금님은 이 미련한 종을 불러 책망하고, 다시 빚을 갚으라고 명령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과 죄사함의 엄청난 은혜을 받으셨죠?
그럼 35절에 있는 결론과 같이, 형제 자매들을 마음의 중심으로 용서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 죄사함과 용서의 관계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내 자신이 하나님 앞에 선 것을 볼 때 마다, 나는 복된 주님이 갈보리에서 나를 위해 행하신 일을 깨닫습니다. 그러면 나는 그 어떤 사람도, 그 어떤 것도 용서할 준비가 됩니다.
나는 용서를 주저할 수가 없습니다. 아니 주저하고 싶은 생각조차 없습니다.”
(기도)
1. 내가 받은 구원의 은혜에 매일 감사하게 하소서!
2. 형제 자매가 내게 행한 모든 일들을 능히 용서할 수 있는 사랑을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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