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 (토) "분별하기 어려운 일들" (열왕기상 13:20-34)
찬송가 452장
북이스라엘의 왕이 된 여로보암이 사마리아 세겜 지역에 우상의 제단을 많이 만들어서 백성들로 하여금 죄에 빠지도록 했습니다.
이 때 유다에서 온 무명의 선지자가 여로보암을 책망했고, 이 책망을 받아들이지 않고 대항하던 여로보암이 하나님의 즉결 심판을 당했습니다.
여러보암은 일시적으로 회개했고, 300년 후에 이 우상의 제단이 모두 무너질 것을 선포하고 무명의 선지자는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사실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대치 중에 있었기 때문에, 유다의 예언자가 북이스라엘까지 와서 경고와 심판의 예언을 전달하였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선지자에게 예언만 선포하고 가능한 한 빨리 돌아오라고 하셨습니다.
그 예언자도 그 지시에 순종하여 급히 귀가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베델의 늙은 예언자가 그를 다시 불렀습니다.
무명의 선지자는 그 호의도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베델의 늙은 예언자는 자신도 예언자인데 천사가 당신을 데려다 대접하라고 했다는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유다의 선지자는 할 수 없이 그의 집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베델의 예언자는 식탁에서 유다의 예언자에게 책망의 예언을 전했습니다.
유다의 선지자가 하나님의 지시를 어겼기 때문에 타지에 묻히게 될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베델의 예언자 말대로 유다의 예언자는 고향으로 돌아가다가 사자를 만나 객사하고 말았습니다. 소식을 들은 베델의 선지자는 그의 시신을 수습해서 매장해주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혼란스러운 것은 베델의 예언자가 좋은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가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속여서 하나님의 지시를 어기게 만들 때는 언제이고, 나중에 죽음을 슬퍼하면서 장례를 정성껏 치루어 주는 것은 뭡니까?
발람 선지가가 발락 왕의 사주에 넘어가는 장면도 마찬가지이지만, 원래 분별이라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다윗이 인구 조사를 한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제로 성도들의 삶에서 분별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몇 있습니다.
-성령님의 역사인지 아닌지
-인간 관계에서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자기 자신의 문제
이런 것들은 원래 분별하기가 까다로운 사안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자신이 얼마나 분별력이 없는지를 분별해야합니다.
우리 자신의 분별력에 얼마나 한계가 있는지를 인정해야합니다. 그래서 너무 확신에 차서 주장하면 안 됩니다.
(기도)
1. 하나님의 지시인지 아닌지를 잘 분별하게 도와주옵소서!
2. 사람의 제안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인지를 잘 분별하게 하옵소서!
3. 우리 자신에게는 분별력이 없음을 겸손하게 인정하여 모든 것을 하나님을 의지하며 한 걸음씩 따라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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