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의 중심내용
기력을 되찾은 사울은 곧장 다메섹의 여러 회당에서 복음을 전합니다. 그가 유대인들의 살해 위협을 피해 예루살렘으로 갔을 때, 바나바의 중재로 사도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 사도행전 9:19b - 9:31 ] (찬송421장)
19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20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21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22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23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24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그들이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25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 내리니라
26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27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28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29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30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31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19b-24절 시력과 기력을 회복한 사울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예수를 증언하는 일이었습니다. 다메섹의 회당에서 동료 유대인들에게 예수가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이요 메시아임을 전파하는 데 지체하지도, 주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의 예수님에 대한 생각, 십자가에 대한 해석, 교회에 대한 이해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것이 회심이고, 다시 태어난 증거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후 내 인생의 방향은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21-23,29,30절 유대인들은 유대교의 대변자에서 배교자가 된 사울을 가만두지 않았습니다. 그를 향한 살해 위협은 다메섹에서 끝나지 않았고, 예루살렘의 유대인들도 그를 죽이려 했습니다. 사울은 어쩔 수 없이 고향 다소로 낙향하여 10여 년을 칩거해야 했습니다. 복음 때문에 고난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9:16)이 벌써 실현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수를 박해하던 자가 예수를 위해 박해받는 자가 된 것입니다. 그도 이제 예수의 제자입니다. 긴 낙향의 세월조차도 청년 사울을 선교의 선봉장으로 빚어가시는 하나님의 시간이었습니다.
27,28절 복음 사명을 위한 사울의 행보에 ‘돕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다메섹에 아나니아가 있었다면 예루살렘에서는 바나바가 있었습니다. 아나니아의 도움으로 사울은 다메섹의 제자들과 함께할 수 있었고(19절), 바나바의 중재가 없었다면 예루살렘 사도들과의 교제도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 둘은 박해자 사울에 대한 의혹과 경계를 환대와 연대로 바꾸어준 사람들입니다. 나를 통해 누군가가 주님의 일꾼이 되고 은사를 발휘하며 적절한 자리와 역할을 찾아가도록 중재하며 돕고 있습니까?
31절 예루살렘(6:7)을 넘어 ‘유대와 사마리아’까지 복음이 확장됩니다. 유대인들의 위협과 박해 속에서도 교회는 무너지거나 사라지지 않았고 도리어 평안 속에서 견고해지고 그 수가 더 많아졌습니다. 세상보다 주님을 더 두려워했기 때문이고, 세상의 위협을 이길 성령의 위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작금의 교회 침체에 대한 진단은 열악한 여건이나 상황이 아니라, 경외와 믿음의 실종이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