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9-16]
난 번 한국 가는 길에 샌프란시스코에서 비행기를 갈아탔다. 한국으로 가는 항공편을 기다리고 있던 어느 한인 가족 일행이 옆에 앉아있었다. 지루한 시간을 견디다 못해 아버지와 아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드디어 탑승이 시작된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아직도 시간적 여유는 충분했다. 그런데 그 가정의 엄마로 보이는 40대 초의 아주머니가 갑자기 신경질을 부리면서 딸에게 소리쳤다. “야 아빠한테 빨리 전화해!” 얼마 후 남편과 아들이 미안한 표정으로 달려왔다. 그 아줌마는 남들이 듣거나 말거나 남편에게 소리를 지른다. “말들을 드럽게 안 들어 먹어! 내가 가지 말랬지! 어서 와서 가방 챙겨!” 대부분의 승객들이 한국말을 몰라서 다행이었지 가장(家長)의 위신이 말이 아니었다.
한국에서 학대받는 노인들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가장 많은 학대자는 친 아들이라고 한다. 신체적 학대는 아니더라도 정서적 학대를 하는 자식들은 더 많을 것이다. [빛과 사랑]이란 잡지에 ‘아버지와 아들’이란 글이 실린 적이 있다.
80세의 노인이 고등 교육을 받은 45세의 아들과 그의 집 소파에 앉아 있었다. 갑자기 한 마리의 까마귀가 집 창문가에 앉았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었다. "저게 뭐지?" 아들이 대답했다. "까마귀예요." 이렇게 묻고 대답하기를 4번 반복하자 아들이 아버지에게 고함을 질렀다. "왜 똑 같은 것을 자꾸 물으세요? 까마귀라니까..." 얼마 뒤에 아버지는 자기 방으로 갔다가 낡은 일기책을 가지고 다시 왔다. 그것은 아들이 태어날 때부터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아들이 3살 이었을 때 23번이나 까마귀를 향해 ‘뭐야?’ 하고 물었지만 아버지는 물을 때마다 대답해주었고 사랑으로 안아주었다는 내용이 있었다. 역시 내리 사랑이다.
아버지와 남편이 폭군이던 시절도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가장들이 이렇게 무시당하고 학대받는 것도 잘못이다. 비록 따뜻하게 사랑을 표현하시지는 못했다 해도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평생을 수고하셨던 아버지들이다. 표현방식과 스킬이 부족해서 젊은 사람들을 화나게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아버지는 여전히 아버지이다. (강재원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