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사순절과 고난주간이 되면 신자들은 ‘금욕’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것은 경건한 전통이다. 그러나 금욕에 대한 열심은 기독교인들보다 이슬람교도나 이방종교에서 더 발달되어 있다. 크리스천들이 금욕하는 최종목적은 이방종교와는 다르다. ‘자신을 희생시켜서 신을 감동시키고 결국 자신의 소원을 성취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크리스천들의 금욕은 ‘자기를 부인하기’ 위한 여러 방법들 중에 한 가지이다.
주님의 십자가 고난을 기념하고 묵상하는 고난주간을 맞아서, 어떻게 하면 주님의 십자가에 더 참여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까?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주님처럼 십자가에 달려서 고통당하고 절규하는 것을 즐기시는 분이 아니시다. 자녀들이 고통당하는 것을 좋아할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다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를 것’을 요구하신다. 주님의 십자가가 아니라 우리에게 주신 나름대로의 십자가이다. ‘자기 십자가’란 사람의 믿음과 사명에 따라서 제각기 다르다. 무게도 모양도 크기도 모두 다르다.
그래서 고난주간을 맞아 수동적인 ‘금욕’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능동적인 ‘성화’와 ‘사명’에 집중해보자. 먼저 갈라디아서 5장을 읽으며 15가지 육체의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고 대신 9가지 성령의 열매가 우리 마음에 맺어지도록, ‘십자가 보혈의 은혜로 덮어주시고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해달라’고 새벽마다 나와서 기도하자. 필요 시 금식도 하면 좋다. 그러나 금욕하고 금식하면서 짜증부리고 혈기부리고 욕심 부리면 아무 소용이 없음을 기억하자.
둘째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경건’에서 적극적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영성’으로 나아가자. 내게 주신 십자가가 무엇일까 묵상해보자. 내가 섬겨야 할 VIP일 수 있다. 내가 더 참아야할 가족 중 한 사람일 수 있다. 십자가에 달리시는 마지막 저녁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끝까지 사랑하시고 끝까지 중보기도하셨던 주님을 본받자. 심지어 십자가에 달려 계신 고통의 순간에도 밑에 있는 사람들을 걱정하셨고, 용서의 기도를 하셨고, 옆에 있는 강도를 전도하시다 가신 주님의 적극적인 사랑이 바로 우리들이 본받아 살아야 할 십자가 고난의 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