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본 교회에서 목사회 모임이 있었습니다. 설교를 맡은 저는 ‘개혁자 예수’라는 말씀을 목회자와 나누었습니다. 유대 종교 기득권자들이 볼 때 예수님은 상당히 괘씸한 이단아요 과격한 개혁자였을 것입니다. 어느 시대에나 영적 개혁이 필요할 때 가장 큰 저항세력은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만일 이 시대에 제2의 종교 개혁이 필요하다면 ‘그에 대한 가장 큰 저항 세력은 바로 우리 목사들이 아닐까?’ 하는 자문을 설교 중 나누었습니다.
1517년 로마 캐톨릭 교회의 평 사제였던 마르틴 루터는 당시 교회의 비성서적인 관행에 대해서 신학적 문제 제기를 했습니다. 실제로 비텐베르크 교회 정문에 대자보를 붙인 것에 대해서는 최근 역사가들이 회의적으로 봅니다. 그러나 루터의 개혁의지와 용기는 대단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찬송가 585장 “내 주는 강한 성이요” 가사만 보아도 당시 재판과 위협을 받던 상황이 얼마나 급박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당시 교황 레오 10세는 루터를 향해서 ‘멧돼지 한 마리가 주님의 포도밭을 짓밟고 있다.’고 정죄했습니다. 보름스에서 열린 재판에 출두해서 ‘주장을 철회하라’는 황제의 위협 앞에 맞서며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라고 그는 기도했습니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루터는 자신에게 호의적인 프레드리히 영주의 도움을 받아서 바르트부르크로 피신합니다. 그곳에서 신약성경을 단 11주 만에 독일어로 번역하였습니다. 당시 성경은 원어와 라틴어로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80년 전 발명되었던 최초의 금속 활자 구텐베르크 인쇄기로 1522년 독일어 성경을 찍어내기 시작했는데 단 두 달 만에 5천부가 판매되었습니다. 루터 성경의 영향을 받아서 1526년 영국의 윌리엄 틴들이 영어 성경을 번역했습니다. 그전에도 라틴어 성경을 위클리프가 번역한 적이 있지만, 그리스어 원어에서 영어로 직접 번역한 것은 틴들 성경이 최초입니다. 그러나 캐톨릭 교회에서는 틴들의 성경을 말살하려고 모두 사들여서 폐기 처분했기 때문에, 처음 찍어낸 6천 부 중에 단 2권만 살아남았습니다. 그러나 재미있게도 이 수익금 덕분에 틴들은 더 좋은 개정판을 찍어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틴들의 성경은 후에 1611년 ‘킹 제임스’ 성경에 90%의 영향을 줍니다.
종교 개혁자들의 모토는 ‘오직 성경, 오직 은혜’입니다. 아무리 세상의 흐름이 이렇다 하여도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가 바로 이 시대를 개혁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가정교회도 용기 있는 개혁의 한 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