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가르침 가운데 좀 상반되는 듯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 어느 날 제자 중 요한이 예수님께 찾아와서 볼멘 소리를 했습니다 . “ 선생님 , 저희가 선생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는 사람을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 못하게 막았습니다 .”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 “ 그를 막지 마라 . 누구든지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너희를 위하는 사람이다 .” ( 눅 9 장 , 막 9 장 ).
주님의 이 말씀은 반대도 하지 않고 협력도 하지 않는 중립적인 입장의 입지를 넓혀주는 가르침으로 보입니다 . 예를 들면 , 오래 전 시애틀의 어느 큰 교회에서 교육관 건축을 하는데 , 건축위원장을 맡으신 장로님께서 나와서 이렇게 부탁했다고 합니다 . “ 여러분 , 건축 헌금을 안 하셔도 괜찮으니까 반대만 하지 말아주세요 .”
그런데 얼마 후 예수님은 정 반대의 가르침을 하십니다 . 제자들에게 기도문을 가르쳐주셨고 , 또 귀신들린 사람을 치유하셨을 때의 일입니다 .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라고 하셨고 사탄이 쫓겨날 때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고 선언하실 때 주신 말씀입니다 . 제자들이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 나와 함께하지 않는 사람은 나를 반대하는 사람이고 나와 함께 모으지 않는 사람은 흩어 버리는 사람이다 .” ( 눅 11 장 , 마 12 장 ).
이 가르침에 의하면 적극적으로 협력하지는 않는 중립적인 입장은 반대자요 방해자로 보입니다 .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동조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 우리는 “ 동무는 반동이요 !” 라고 호령할 수 있단 말인가 ? 오래 전 교회에서 헌신 충성하지 못하는 성도들을 향해 엄중한 톤으로 불호령 같은 책망 설교를 하시던 목사님들의 기억이 납니다 . 그 때는 성도들이 순진해서 반발하지 않고 오히려 죄책감에 고개를 떨구었는데 요즘 같으면 당장 화를 내면서 떠나거나 대들었을 겁니다 .
그렇다면 주님의 말씀은 일관성이 없는 것일까요 ? 중립자를 협력자로 보아야 할까요 아니면 배반자로 보아야 할까요 ? 답은 두 가지 상황이 달랐다는 데 있습니다 .
(1) 만일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누군가가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해서 섭섭함을 느낄 때에는 첫 번째 가르침이 해당됩니다 . ‘ 반대만 하지 않아도 도와주는 것이다 ’ 이렇게 기대치를 줄이면 실망치도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
(2) 만일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나 자신의 태도를 판단할 때에는 두 번째 가르침을 적용합시다 . 차지도 덥지도 않은 소극적인 신앙관 ,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 불순종적이고 무관심한 나 자신의 이기적인 문제를 보면서 좀 더 적극적인 헌신을 결단하면 좋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