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 (화) “죄를 사하는 권세” (누가복음 5:17-26)
병을 고치는 능력과 죄를 사하는 능력 중에 뭐가 더 큰 능력일까요? 당연히 죄를 사하고 구원을 선언하는 것이 오직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신성한 능력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중풍병과 같은 불치병 환자가 눈 앞에서 치유받는 장면 만을 신기하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죄사함을 선포하는 주님을 향해 신성모독이라고 오히려 욕을 했습니다. 참 어리석은 신앙입니다.
죄사함 없이 치병만 받는다면 그 영혼은 영생을 얻지 못항 것입니다. 그러나 육신의 고침과 더불어 영의 구원을 받는 것이야말로 가장 놀라운 은혜요 가장 큰 복인 것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오늘날의 크리스천들 역시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삶의 문제가 해결되고 성공할 때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좋아합니다. 그러나 정작 더 중요한 영혼 구원과 신앙 성장에 대해서는 무관심하지는 않습니까?
그 중풍병 환자보다 더 큰 믿음은 그 친구들의 믿음이었습니다. (20절) 주님께서는 환자가 아니 그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치유해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주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는데 가장 큰 방해가 되는 것은 다름아닌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 방해가 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그 영혼을 주님께로 어떤 고생을 해서라도 인도하는 사람입니까?
(기도) 1. 육신의 응답보다 구원의 능력을 더욱 찬양하게 하소서 2. 괴로움 중에 있는 사람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주는 믿음을 주옵소서 3. 신앙에 방해가 되는 사람이 아니라 도움을 주는 사랆을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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