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0-2016)
성경에서는 세례와 침례의 구분이 없다. 그냥 baptizo(밥티조)일 뿐이다. 예수님 당시에는 교회 건물이 없이 야외에서 설교하고 믿던 시절이기 때문에 가까운 요단강에서 침례를 베풀었던 것은 당연하다. 그 후 사막이나 물이 없는 곳에서도 회심자가 생겼고 2세기의 문서에 보면 ‘몸을 담글 물이 없을 때 물을 뿌려서 세례를 주어도 좋다’는 가르침이 나오기 시작했다. 313년 이후 대형 교회 건물이 생기면서 세례가 보편화 되었다. 종교개혁 이후 세례와 침례의 형식이 중요한 것은 아니기에 모두 인정한다는 입장이 많았고 침례교를 제외한 대부분의 교단이 두 가지를 모두 인정한다.
상황과 대상에 따라서 세례와 침례를 적절하게 활용하면 좋을 것이다. 담글 물이 있는 수양회나 야외예배에서는 가능하면 침례형식으로 하면 좋다. 세례가 ‘죄사함’을 보여준다면, 침례는 ‘거듭남’을 가시화해주기 때문에 ‘변화된 삶’에 대한 감동과 결단이 더 전달되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침례탕이 없는 교회에서 거듭난 사람을 야외 행사가 있을 때 까지 1년이나 기다리게 하는 것은 좋지 못하다. 또 유아세례와 같은 경우 물에 담그는 것보다는 머리에 물을 뿌리는 세례(sprinkle)이나 물을 붓는 관수례(pouring) 형식이 더 적절할 것이다. 물을 붓는 것은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또 한 가지 교파마다 차이를 보이는 것이 유아세례에 대한 것이다. 캐톨릭이나 장로교를 비롯한 대부분의 교단에서는 유아세례를 베푼다. 부모의 신앙고백을 통해서 아이가 어릴 때부터 믿음으로 양육하겠다는 뜻이다. 유아세례를 받은 자녀가 자라 15세가 되면 신앙고백과 견신예식만 하고 입교하면 된다. 그러나 세례 전에 회개를 강조하는 침례교단에서는 유아세례를 반대한다. 본인 자신의 신앙고백이 없는 유아세례는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성경적으로 볼 때 유아세례는 유대인들이 신생아에게 출생 8일 만에 행하던 할례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있겠다. 유아세례는 어찌 보면 부모를 위한 예식이다. 일종의 헌아식이다. 자식에 대한 소유권을 일찌감치 포기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래서 유아세례는 계속 필요하다. 다만 그 아이가 15세쯤 되면 진정한 신앙고백을 할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하고 신앙확신을 점검해야겠다. 그리고 본인이 원한다면 다시 한 번 침례를 베푸는 것도 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런 예식을 통해서 본인의 삶을 하나님께 더욱 헌신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강재원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