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토) “이 시대의 박해” (눅 21:20-28)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신앙의 박해를 받아도 믿음을 지켜야 한다고 당부합니다. 저는 생각해보았습니다. '지금 이 나이에 순교를 할 수 있을까?' 아니면 타협해서 위기를 모면한 후 30년을 더 살 수 있다면 그것을 선택할 것인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 청년들은 앞으로 60-70년은 더 살아야하니까 순교가 더 어려울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아무도 순교할 수 있다고 큰 소리 칠 수가 없겠습니다.
예수님의 예언대로 유대인들에게 박해의 시기가 왔습니다. 대략 35년 후 로마의 군대가 침공해서 예루살렘을 파괴했습니다. 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경고하신 종말의 때에 대한 예언은 항상 두 가지로 성취될 수 있습니다. 우주적 종말이 있고, 개인적 종말/역사적 종말이 있습니다.
그럼 지금은 어떤 때입니까? 자유의 시대, 평화의 시대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에는 종교의 자유도 있습니다.
원래 미국 수정헌법 1조에서 보장하고 있는 정치와 종교의 분리, 그리고 종교의 자유 규정은 개신교 신자들을 영국 국교 (성공회)의 박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것입니다. 그 당시에 타종나 이단의 위협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에는 무신론, 종교다원주의, 동성애 등의 세력이 커져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종교의 자유를 기독교를 반대하는데 악용하고 있습니다. 공공장소 기독교 편향 금지, 안 믿을 권리 주장, 성경적 가치의 표현 금지 등 오히려 기독교 신자들이 역차별을 당하는 실정입니다.
민주당에서 지나치게 무신론자, 세속주의자들의 편을 들어서 기독인들의 종교의 자유를 많이 침해했습니다. 반대로 공화당을 지지하는 미국의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은 신앙의 가치와 더불어 백인 우월주의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타종교나 타인종에 대한 공격까지 감수하고 있습니다.
이런 양극단 속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한 가지 정답은 없습니다. 번갈아가면서 그나마 균형을 잡고 있을 뿐입니다. 크리스천들이 이런 사회 속에서 입으로는 신앙을 부인하지 않지만 행동으로 부인할 수 있습니다.
(디도서 1:16) 그들은 입으로는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지만, 행동으로는 부인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가증하고 완고한 자들이어서, 전혀 선한 일을 하지 못합니다.
어쨌든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적인 건전한 종말론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지나친 비관론과 지나친 낙관론의 그 사이에 있는 것이 성경적이고 가장 건전한 종말 사상입니다.
지나친 비관론의 종말신앙을 갖게 되면 세상을 등지고 이단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지나친 낙관론의 종말신앙을 갖게 되면, 성경의 가치를 타협하고 세속화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주님의 말씀처럼, 1) 박해를 각오해야 합니다. 지금과 같은 평화의 시대에 자유 사회에서도 신앙 때문에 어려움과 불이익을 겪을 수 있습니다. 정치적 박해는 아니라도 문화적 박해는 있습니다. 신앙 때문에 왕따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2) 그러나 극단적인 비관론도 조심해야 합니다. ‘어차피 이 세상은 악해진다. 그러니까 사랑으로 섬기고 덕을 세우면서 삶에서 빛과 소금이 되려는 것은 소용없다.’ 이렇게 선한 영향력 자체를 포기하면 안 됩니다. 끝까지 VIP가 변화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기도하고 섬겨야 합니다. 회심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이기 때문입니다.
(기도) 1. 순교적 각오를 가지고 담대하게 살게 하옵소서! 2. 작은 박해와 손해를 감수하게 하옵소서! 3. 이 세상의 가치와 타협하지 말고, 사랑과 기도로 섬기게 하옵소서! |